미술사(美術史)는 미적 대상과 시각적 표현에 대한 연구이다. 미술의 역사는 지역별, 장르별, 시대별로 세분화하여 전 세계 예술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회화나 조각, 장식 건축 등 방법론을 강조했다.
[동양 미술사]
동양 미술사(東洋美術史)는 아시아(동양) 지역 미술의 역사이다. 동양 미술은 그림의 표현 양식, 쓰이는 기본 재료에 따라 크게 묵화와 채색화로 나뉜다. 채색화는 그림의 대상에 따라 아래와 같이 구분한다. 현대에 이르러 서양화의 회화 방법과 사용되는 재료의 부분적인 수용을 통하여 동양화는 그 표현 양식 및 기법에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의 미술]
한국의 미술은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서 발생했던 미술을 말한다. 고분벽화, 산수화 , 불화, 문인화 같은 평면 시각 매체 예술과, 도자기, 불상, 석탑 같은 입체 시각 매체 예술을 포함한다. 한국 미술사에서 미술은 서예 같은 다른 시각 예술이나, 궁궐, 한옥 같은 건축 예술과 시조, 향가와 같은 문학 예술, 탈춤, 판소리와 같은 공연 예술과 연관을 맺으며 발전해왔다. 이후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양 회화, 사진, 영화 등이 들어왔다. 광복 이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방송이 시작되었고, 이에 대응해 현대 미술계에서는 비디오아트가 시도되었다. 80년대 이후부터 인터넷 등의 신기술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미디어아트가 소개되었다.
[조선 미술사]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조선 양반들은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했다. 국가적으로는 삼강행실도 같이 유교의 이념을 강조하는 서적이 출판되어 보급되었고,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해 각종 예법 등이 의궤 같은 기록으로 남겨지기 시작하였다.
미술에서는 화려한 불화보다 중국의 유학자들이 선호한 문인화의 영향이 강해졌고, 조선에서도 화려한 채색화보다는 수묵화가 많이 그려졌다. 양반 사대부 사이에서는 사군자나 산수화가 유행하였다. 소재는 유교의 이야기나, 도가의 이야기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 회화가 중국 산수화 기법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바위의 모습은 한반도에 없는 모습으로 도식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소재 면에서는 도원경을 소재로 하였다.
불교는 왕비나 사대부 여인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성행하였지만, 더 이상 불교는 고려시대처럼 귀족적이고 화려한 모습을 띠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사찰도 점차 도시보다 산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불화 양식은 점차 도식화되기 시작하였으며, 무속신앙을 받아들여 화려한 색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칠성당 같은 무속 신들이 사찰에 봉안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선 전기에는 아직 여성의 권리를 제약하는 경향이 심화하지는 않았다. 비록 여성이 자유롭게 집 밖으로 나다니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신사임당 같은 여성 화가들은 초충도 등을 그려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면서 성리학적 이념은 점차 강화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고려시대와는 다른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영조와 정조가 집권한 시기에 조선 문화는 짧은 중흥기를 맞이하였다. 이 시기에 정선은 옛 중국 그림을 모방해 도식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경치를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를 남겼다. 김홍도는 당시 서민들의 풍속을 익살스러운 필채로 그림에 담았다. 신윤복은 당시 양반 사대부들의 향락 생활을 화폭에 담아냈다. 이외에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민화가 발달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미술]
1990년대 이후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민주화 정권이 자리를 잡으면서 역으로 민중 미술의 입지가 줄어들게 되었다. 대중운동이 퇴조하고, 냉전 구조가 붕괴하고, 1997년 대한민국이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관은 점차 개인주의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한국 일반 대중들은 생계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신경을 쏟게 되었으며, 그 결과 '풍요 속의 빈곤'이라 불리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에 예술가들은 독재정권 타도나 통일 실현 같은 거창한 주제보다, 개인적인 미적 관심사에 몰두하거나, 보다 실질적인 인권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예술 경향이 한국 미술계로 들어오게 된다. 이에 따라 점차 개념 미술을 시도하는 작가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미 1980년대부터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승택 등의 행위예술 작가들은 이런 작업을 시도하고 있었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신기술의 영향을 받은 [미디어아트] 역시 한국 미술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백남준이 점차 비디오아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국내 미술계에도 백남준의 작업이 소개되고 이와 유사한 시도를 하려는 작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내에서 비디오아트를 시도한 작가로는 박현기가 있다. 미디어아트의 영향이 강해지면서 한국 미술은 점차 혼성 예술, 종합 예술화 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중국의 미술]
중국 미술은 중국 또는 중국인에서 기원하였거나 실행된 시각 예술이다. 중화민국(타이완)이나 화교가 중국 문화에 기반해 실행한 미술도 중국 미술로 분류될 수 있다. 중국의 예술은 석기 시대에서부터 시작하는데, 그 연대가 기원전 1만년까지 추정된다. 이 당시의 예술은 대부분 단순한 도자기나 조각의 형태를 가진다. 이후에는 왕조에 따라 시간이 지나며 미술적 양태가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국은 문화는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 보존되어 온 것이 특징이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르네상스 시기부터 장식 예술로 분류되어 온 것들이 중국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져 왔으며, 도자기 같은 경우 여러 명의 장인이 모여서 대량으로 생산 및 보급하기도 하였다. 도자기, 조칠, 직물 등의 공예품들은 황궁에 놓여서 그 황실의 위엄을 보여주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반면 수묵화는 주로 사대부에 의해 그려졌다. 풍경, 새, 꽃 등의 사물이 주로 묘사되었다. 이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받은 인상에 기반하여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동양 고유의 미학은 서양에 수입되어 인상주의라는 사조를 낳기도 했다.
[일본의 미술]
일본 미술은 고대 토기, 조각, 수묵화, 서예, 우키요에, 도예, 오리가미, 현대의 망가 등 넓은 범위의 예술 양식과 매체를 포괄한다. 기원전 1만 년에 일본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때부터 시작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가 있다.
에도 시대 나베시마야키(鍋島燒)은 조선인 이삼평(李參平)에 의하여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는 일본 최초의 자기(磁器)이다. 청람색(靑藍色)을 띄는 자기는 소메쓰케(染付)로 부른다. 같은 계통의 자기가 많이 만들어졌으며 이마리항(伊万里港)에서 수출되었으므로 이마리야키라 불렀다. 오랫동안의 에도 막부 정치에 의한 봉건제도가 붕괴하고 메이지 정부도 서양 근대 문명을 흡수하는 정책으로 서양 미술의 영향이 점차 강하게 나타나, 미술계는 서양의 감화를 강하게 받아들일 양식 미술과 재래의 일본 미술의 흐름을 발달시키려고 하는 일본식 미술의 양면이 전개되었다.
쇼와 초기에는 세계적인 불경기의 영향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이 드러났다. 특히 미술 회화 부분에서도 사회주의적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추상주의나 초현실주의와 같은 새로운 미술의 양상도 수입되어 왔다.
'지식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화학 (0) | 2023.08.20 |
---|---|
정보과학 (0) | 2023.08.20 |
미술사[서양 미술사(2)] (0) | 2023.08.05 |
미술사[서양 미술사(1)] (0) | 2023.08.05 |
언어학 (0) | 2023.08.04 |
인문학 (0) | 2023.08.04 |
인류학 (0) | 2023.08.04 |
고고학 (0) | 2023.08.04 |